2020/05/28 04:36

오월 27 나는 오늘

정말 얼마만에 블로그인지 감회가 새롭다. 나의 십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곳 이글루스에서 나는 오늘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었고 이곳에 나의 하루를 조금씩 적어갈 생각이다. 마침 한국어의 어려운 단어들은 종종 잊고 지내는것같아서 이렇게 글을 쓰는것으로나마 한국어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루를 되새기고 나도 되새기고. 독일에 온지는 총 3년 20일이 되었다. 나는 그동안 독일에서 온 시간을 1분기 2분기 3분기로 나눌수 있을거같다. 그리고 지금 다시 4분기로 향하는중. 1분기는 마냥좋았고 2분기는 마냥 바보처럼 바람처럼 돌아다니다 운좋게 자리를 잡았고 3분기는 그안에서 크기위해 마구 달렸다. 그리고 지금 4분기. 현재 나는 나의 새로운 집으로 이사가기 딱 한달 전이다.


한국에서 독일을 떠나기전에는 막연히 2년동안 쉬고오자, 라는 생각이 더컸다. 그땐 이십대였고, 지금은 삼십대다. 그동안 공부하고 싶었던 독일어를 공부하고 나름 새로운 친구들과 문화를 체험하겠다는 생각에 돈도 열심히 모았더랬다. 당시에 유학생 친구들이 부모님한테 돈 받고 다달이 사는게(3년 내내 부모님께 월급받는 친구도 있다) 어떨땐 부럽기도했다. 2년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도착한 독일은 어쩌면 내가 선택한것들중 가장 쉽고 가장 행복하고 가장 힘든삶을 선사하는것과 같았다. 인생에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대한 무게는 내가 짊어진다고 하는데 사실 힘든 무게따윈 없었다. 그저 감사하고 감사하다는 생각만이 가득하다. 지금까지는.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운이 정말 너무나도 좋은놈이다. 도착한날부터 지금까지. 너무나 완벽하게도 돈이 떨어질때 구직서를 썼고 계약서를 썼고 턱걸이로 비자를 받았고 턱걸이로 좋은 집을 구했다. 사실 집을 구할때에도 누구보다 민첩하고 빠르게 그들에게 침투하려고 노력했고 오버하지않으며 규율을 지키고 선을 지키며 그러면서 좋은 사람으로 첫인상을 남기기위해 애썼다. 마치 배우처럼. 한국에서 배운 약간의 사회성웃음은 이곳에서 몫을 톡톡히 한다. 이 사회성웃음은 기본적으로 성격자체가 발랄해야 더 잘 써먹을수 있는데 다행히 난 그간 이러이러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덕분에 이곳에서 그런 경험들은 독일어를 쥐뿔도 못했던 나를 끌어올려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많은 독일인들을 무찌르고 좋은집을 얻게되었다. 이곳은 삼십이년째 줄곧 누구와 살았던 나에게, 이곳은 일도 사람도 사랑도 그리고 첫 독립의 집도 허락해주었다. 나의 엄청나게 쌈빡한 이십대후반을 정열적으로 청춘으로 꾸며준 나의 하숙생친구들 또한 만났으니 이것만으로도 성공한 인생이라 생각하고있다. 


이제, 누군가의 눈치보지않고 당당히 누군가를 초대해 (작지만) 맘껏 편히 쉴수있고 요리할수있는 공간이 생긴것만으로도 매우 행복하다. 앞으로 더욱더 열심히 모으고 걸어서 조금 더 큰 집으로 또 큰 집으로 점점 나아가는 작은 꿈을 갖고 한걸음씩 나아가고있다. 지난 휴가때 엄마는 휴가내내 잔소리를 하다가 결국 싸움이 번지고서야 나의 등짝을 때리고 울며 다시 돌아오라고 했는데 내가 이곳에 자리를 잡고있고 점점 돈도 모아가고있으니 나름 주변에 조용한 자랑을 하는 모양이다. 주변에서도 딸이 독일에 산다고 하니 뭔가 있어보이는 모양인데 솔직히 뭐 다를거 있나. 이길것만같던 월드컵 축구도 발렸는데(200명 독일인과 함께 본 그날을 잊지못한다 흥미니가 골을 넣었을때는 나는 일본인이다 라고 주문을걸었다 200명 게르만인들에게 뒈질까봐) 그냥 똑같은 나라다. 그저 어디에 있든 내가 만족하는 삶을 사는게 중요한거 같다. 지금 나는 다시 한국으로 가봤자 답도 없고해서 여기서 버티고 있는중인데, 안타깝게도 매우 만족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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